
홈플러스 발목 잡고 쿠팡 날개 달아준 '유통법', 누구를 위한 규제였나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과 '기울어진 운동장'의 탄생
지난 2012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은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휴업과 심야 영업 제한이라는 강력한 족쇄를 채웠다.
당시에는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포식자'로 규정되었고, 규제만이 상생의 해답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14년이 흐른 지금, 유통 시장의 풍경은 궤멸적으로 변했다.
규제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은 홈플러스를 비롯한 오프라인 대형마트들이 유동성 위기와 실적 악화로 생사의 기로에 선 사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섰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던 법안이 정작 국내 오프라인 기반 유통사들의 손발을 묶어두는 동안, 온라인 공룡들만이 무주공산이 된 시장을 독식하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새벽배송' 금지가 낳은 역차별, 마트 점포는 왜 놀아야 했나
유통법의 가장 치명적인 독소 조항은 오프라인 점포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배송까지 영업 제한 시간에 묶어버린 점이다.
대형마트는 전국 곳곳에 촘촘한 물류 거점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는 매장에서 상품을 꺼내 배송하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의 신선식품 대신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쿠팡의 로켓프레시로 발길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유통법은 전통시장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지 못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
오히려 소비의 흐름 자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대형마트 3사의 합산 매출이 쿠팡 한 곳에 밀리는 충격적인 역전 현상을 초래했다.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위축, 규제가 남긴 상처들
유통법의 그늘은 단순히 기업의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대형마트 점포 수가 줄어들고 영업이 위축되면서 수만 명의 마트 노동자들이 일터를 떠나야 했다.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검토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몰린 것은 10년 넘게 이어진 경직된 규제의 누적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대형마트에 입점한 수많은 소상공인과 인근 상권 역시 마트의 집객력이 떨어지면서 동반 쇠락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던 규제가 오히려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모순적인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반면 쿠팡은 규제 밖에서 막대한 자본력으로 물류망을 독점하며, 이제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해버렸다.
시대착오적 규제 일몰 연장, 이제는 '핀셋 완화'가 절실하다
최근 국회는 유통법 규제 일몰을 2029년까지 또다시 4년 연장했다. 유통 환경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그리고 AI 기반의 초개인화 서비스로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전의 낡은 잣대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유통 산업의 발전과 상생을 원한다면, 이제는 대형마트를 규제의 대상이 아닌 '지역 물류 거점'으로 인정하는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만큼은 허용하거나, 지자체 상황에 맞게 영업 시간을 자율화하는 등의 '핀셋 완화'가 시급하다.
특정 플랫폼이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를 막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최소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결론 — 상생은 낡은 규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무대에서 완성된다
지난 14년의 유통법 역사는 규제가 결코 약자를 보호하는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특정 업태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방식은 결국 산업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규제 밖의 또 다른 거대 공룡만을 키워내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제는 대형마트를 적대시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시너지를 내며 소비자의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골목상권 보호와 유통 산업의 도약은, 기업의 혁신 의지를 꺾는 족쇄를 풀고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맞는 공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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